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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제목

"한국 여성 근현대사: 정치사회사, 문화사, 인물사" 관련 신문보도 4

작성자
아시아여성연구소
작성일
2003.07.21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41
내용
<여성신문> 2003년 7월 4일 기획/특집

- [발굴] 여성독립운동가 이병희씨 - 

"" 내가 이육사의 ‘청포도’세상에 알렸소""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과 일생을 바친 분들의 뜻과 공을 기리기 위해 국가에서는 6월을 ‘보훈의 달’로 정하고 있다. 감사하고 위로해야 할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특별한 생애를 갖고 있는 한 독립운동가의 삶을 소개하려 한다. 독립운동을 위해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전 생애 동안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헌신과 고난에 대한 칭찬과 존경은커녕 사회의 그늘에서 숨어 살아야만했던 한 여성의 이야기다. 

이육사의 마지막 함께 하다

이병희(86 , 독립유공자)선생은 이육사 연구가들이 40여년 걸려 찾아낸 인물이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는 이육사의 ‘광야’와 ‘청포도’가 바로 선생이 육사의 시신을 수습해 가족에게 전달하면서 함께 전해 준 시들이다. 

“이육사 시체를 어디 가 찾아? 나 아니었으면 못했지. 이제 그 청포도니 광야니 그 시집을 마분지 조각에다 이 만큼 쓴 거를, 그게 유물이야. 다, 내가 가지고 나온 거야. 지금 국민, 중학교 교과서 책에두 나오잖아. 내가 그거 안 가져 왔어봐라? 일본눔들 손에 들어 갔어봐라?”

선생 자신이 독립운동가였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큰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이 독립운동가였으며, 이육사의 마지막 시신을 거두었던 자랑스러운 그가 왜 사십여 년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살아야만 했을까?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노동운동을 비롯해 독립운동이 자신의 삶, 그 자체였던 이병희! 그의 삶에서 독립운동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다. 당시상황을 회고하면서 하는 말이다.

“나라를 팔아먹으먼은 대대로 우리 집안은 역적이 된다. 우리 집에 구호가 뭔지 알어? 집안에. ‘죽으면 너만 죽어라’이거야. ‘그러지 않으면 너는’, 응, ‘우리가 너를 매장시킨다’이거지. 우리는 후회 안해. 왜 후회가 없느냐, 제 국민 즈희나라 찾자는 게 국민이지, 나라가 읍는 백성이 그거 산다고 헐 게 뭐 있어? 우리는 응, 어떻게 똑똑질 못해서 제대로 못했다는 거 뿐이지. 그거 후회허면 못해. 암만 아픈 거 생각혀도 애 나면 아프지, 그러다가 또 아이 낳지! 그 짓이나 마찬가지야. 음- 그 병이 들어노면 못 고쳐.”

한국사회 냉전이데올로기로 숨어살아

열여섯, 요즘의 중학교 3학년이었을 나이에 일본인이 경영하던 종연방직회사에 들어가 파업을 일으키고, 서대문형무소에 2년 4개월을 복역했던 생존인물이다. 형기를 마치고 형무소에서 나와 보니, 어머니는 굶주림과 추위로 돌아가시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혈혈단신이 되고 말았다. 이후 북경으로 망명, 카프문학회원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의열단활동에 가담했다. 

1943년 북경에서 이육사와 함께 임시정부로의 충칭행과 국내무기 반입을 모의하던 중 밀고에 의해 체포돼 구금됐고, 육사는 이듬해 북경감옥에서 옥사하고 말았다. 

“지하실에서 관을, 떡 뚜껑을 여니깐 인제 얼굴이 새파래지면서 하--얘지더니, 코에서 뭐, 핏물이 촤르--륵 쏟아지대, 죽은 사람이. 그래 ‘할배, 뒷일은 내가 다 처리할게, 눈감고 곱게 가’이래 놓고, 신발두 없어, 안경두 없고, 있는 거라고는 그- 시집 한 권 빽에는 없어, 그리고 만년필 한 개하고, 그걸 날(나한테) 내주더라고.”

그러나 이병희 선생의 생애에 그렇게 자랑스럽고 당연했던 두 가지 일 - 독립운동과 이육사의 시신을 거둔 일- 이 평생의 걸림돌이 될 줄이야…. 

선생에게 있어 독립운동은 삶이었고, 존재기반이었다. 그에게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가 큰 차별이 없다. 선생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일본인과의 싸움에서 이겨 나라를 되찾는 독립운동만이 중요한 것이었다. 

“일본눔허구 해방 전에 싸운거고, 저 중국에 와서도 일본눔허구 싸운거기 땜에 이건 사회주의 운동이지 일본눔허구 싸웠기 때문에 사회주의 운동으루, 민주주의 운동으루 쳤다 이거야.”

그러나 6·25한국전쟁을 지나 한국사회가 냉전이데올로기의 늪 속으로 빠져들게 되면서 독립운동가로서의 자긍심을 느낄 겨를도 없이, 자신의 생각이나 상황을 설명할 기회를 갖지도 못한 채, 또 음지로 숨어들어야만 했다. 

“난 그 때 숨어살았잖아. 나는 ‘붙들리기만 하면 총살이다’ 허니까 내가 숨어 ‘살었지’. 나도 인제 사회주의운동을 했으니깐, 그렇게(총살당하게) 돼까봐 겁이 나서. 남편은 또 그런 사람이 아니니깐, 그러구 각 지방으로 댕기며 일했고 그니까 여기저기 산중으로 댕긴다고 따라 다니면서 살고 여긴 전혀 몰랐지.” 

육사와의 동거설로 가문서 외면 당해 

또 하나는 이육사와 동거설로 가문에서 홀대를 당하게 된다. 이육사는 이병희 선생의 할아버지뻘 되는 친척이다. 어려서부터 집안끼리 가깝게 지냈고, 독립운동을 위해 함께 일했던 동지적인 관계이기도 하다. 그런데 육사가 1943년 동대문 경찰서에서 체포돼 고문을 당하는 과정에서 다른 동지들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자백을 했던 것이 선생에게는 평생의 정신적인 짐으로 남고 말았다. 

“이육사를 뚜들겨 패니까 ‘너 병희 뭐 허려 만났느냐?’, ‘결혼할랴고 만났다’. 그리고 ‘병희하구 동거를 했다’. 우리 아버지허고 큰아버지허고 다들, 연락허러 혼인 때문에 왔다갔다했다 허니까, 경찰서에서도 끝까지도 그렇게 ‘이병희하고 동거생활 했다’했으니까, 그게 인제 결국은 동거인이 된 거야. 육사는 서른 네 살이고 나는 스물 일굽밖에, 스물 여덟밖에 안됐거든. 그래가지고 끝끝내 (목소리가 커지며)동거인으로 돼버렸어.” 

그 때 이미 이육사는 1935년에 안일양과 결혼한 상태였다. 이 일로 선생은 육사의 가족과 친척들에게 끝없는 의심을 받게 됐다. 선생은 그 억울함에 대해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이 호적등본에다가 동거인이라고 해니깐 나하고 연애하는 줄 알어. 그렇게 썼다고 해서 망신헌다구, 흐흠. 날보고 양반을 망신한다고(날 찾는 사람들에게) 안 가르쳐 준거야. 동거인이라구 헌 거 때문에 챙피해서 못 가르쳐줬대. 육이오 때 그(육사) 집에 가서 우리 남편하고 아이 데리고 가서 피란하고 그랬는대두. 그(동거인 문제)건 즈이(육사) 마누라하고 나허구 그 집이 있으면서 밤낮 얘길해서 알거던. 아무리 그 사람(이육사)하고 했다맨? 그리구 그 시체를 상에다 으이, 으이 놓고 (영감한테)결혼승낙을 해? 아무리, 인간인데, 짐승도 아니구. (쌀쌀맞은 소리로) 내가 남편 데리구 거(육사) 집에서 피란허구 어쩌구 그래? ”

뒤늦게라도 그의 공을 기려 1996년 독립유공자로 인정됐고, 중국과 몽고를 오가며 독립운동하다가 몽고에서 타개하신 아버님의 유해를 국립묘지로 이장해 올 수 있게 돼 이병희 선생에게는 그간의 고통과 아픔들을 조금이나마 위로 받는 좋은 계기가 됐다. 

“이해하고 말 통하는 사람과 살아봤으면”

선생의 삶은 한국의 격동의 세월 속에서 한국여성이 어떻게 생존해 왔는가를 또 다른 측면에서 조명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선생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 묻는 질문에.

“난 관심이 없었어. 난 남편도 싫여했는데, 뭐. 그런 관심이 없어. 그 산 거 보면 우습게 살았어. 사상두 달르지, 말귀도 못 알아듣지, 내가 말하먼 그게 통과가 안 되지, 그러니까 할 수 없이 입을 딱 다물고 벙어리로 산 거지. (목소리 작아지면서) 그저 허무한 생활을 보낸 거 같애여. 언제 죽을지 몰르는데 꿈이 어딨어? 지금은 그래. (목소리가 밝아지면서) 나를 같이 애껴주는 것보더두, 나를 이해허고 모(뭐)를, 말을 허며는 통허는 사람, 그[런] 사람허구 살아봤으면 그저 그거지.” 

한국역사에서 큰 획을 가르는 해방과 6·25전쟁의 격변 속에서 자신이 서야 할 자리를 잃어 버리고, 역사의 음지에서 겪었던 아픔들을 딛고 일어선 한 여성의 삶에 대해 ‘학문적인 연구’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존경과 감사의 머리가 숙여진다. 

이 글은 숙명여대 아시아여성연구소에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기초 학문지원을 받아 연구되고 있는 〈한국여성 근·현대사〉연구의 일부를 재구성한 것이다. 〈편집자 주〉

▶김은실 / 숙명여대 아시아여성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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